오빠가 나오는 꿈을 꿨다.
공항 안이었다. 넒은 창을 통해서 한낮의 새햐얀 빛이 들이치고 있었다.
오빠는 평소 자주 입던 옷을 입고 있었다. 회색 탑텐 후드집업에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에서 사줬던 베이지색 맨투맨 티셔츠, 흰색 나이키 에어포스, 청바지. 오빠와 걸으며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야기 할 시간이 짧다는 걸 알아서 걷는 내내 초조해했던 것 같다.
걷다보니 어디론가로 올라가는 긴 에스컬레이터 앞에 도착해 있었다. 오빠는 거기로 가야만 하고, 나는 이 이상 따라갈 수 없다는게 느껴졌다. 급하게 오빠를 꽉 껴안았다. 그리고 눈을 보면서 사랑한다고 했다. 오빠가 나도 알아, 하더니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몸을 틀었다. 내가 팔을 붙들고 안가면 안되냐며 매달렸다. 오빠는 내 손을 뿌리치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서서 고개만 저었다. 담담하고 평온하면서도 자기도 정말 어쩔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얼굴을 보니까 나도 더는 오빠를 붙잡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놔줬다. 오빠는 그렇게 뒤돌아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오빠의 회색 등이 점점 멀어지는 걸 바라보며 계속 울었다. 오빠 말고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떠들거나, 뛰거나, 뒤도는 사람 하나 없이 고요했다. 올라가는 사람들 모두 아무런 짐을 들고있지 않았다.
오빠 말고도 이상하게 또렷히 기억나는 사람이 두 명 더 있다. 첫번째는 오빠를 붙잡고 있을 때 나를 째려보며 서 있었던 젋은 남자다. 모델처럼 키가 아주 크고 마르고, 피부가 허연 남자였다. 엄청 잘생긴 느낌이었는데, 코가 좀 이상했다. 모기입? 같다고 해야하나, 꼭 피노키오 코처럼 길고 뾰족하게 생겨서 무서웠다. 내가 울고불며 오빠를 붙잡고 놓질 않으니까 그 남자가 나한테 크게 화를 냈다. 구체적으로 기억은 잘 안나는데 니네 둘이 여기서 뭐하냐 뭐 이런 식으로 짜증을 냈던 것 같다. 오빠랑 이야기하는데 그 남자가 자꾸만 끼어들어서 방해를 하니까 나도 갑자기 열이 확 받아서 "야 너 입 다물어 나한테 한 번만 더 소리지르면 니 코 짤라버릴거야." 하고 소리질렀다ㅋㅋㅋ 그때 당시에는 엄청 무섭게 화냈던 것 같은데 깨고나서 생각해보니까 웃기다... 코를 잘라버린다니 무섭다 나. 아무튼 오빠를 놓아주니까 그 남자도 조용해졌다.(아빠와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빠는 아무래도 그 남자가 저승사자인 것 같다고 한다. 저승사자라니. 뭔가 전설의 고향같은... 예스러운 느낌이 우습긴 한데, 딱히 나한테 악감정도 없으면서 참견하며 성내던 모습이 뭔가 그럴싸했다... 입구에 서서 줄관리 하는 말단 직원같은 느낌...? 안 그래도 서서 일해서 힘들어 죽겠는데, 진상손님 하나 때문에 뒤에 줄 밀려서 일 꼬이면 아무래도 화가 나지. 이해해주기로 했다.) 두번째는 오빠가 가고나서 뒤에 온 아저씨다. 꿈에서 내가 손에 들고있던 커피를 한 모금만 달라고 부탁하시길래 드렸다. (뭔가 오빠한테도 한 모금 줬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난다.) 천천히 홀짝 하시더니, 커피를 다시 돌려주시고는 오빠가 사라진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셨다.
잠에서 깨고 시계를 보니까 오전 6시 48분이었다. 오빠가 돌아올 곳이 없는데, 못돌아오는게 당연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오빠가 떠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슬퍼져서 계속 울었다. 오후에 오빠 제사가 있었는데, 거기에 오빠가 없다는 확신이 들어서 그냥 안갔다. 오빠네 어머니께서 내가 오빠를 잊었나 생각하실까 묘하게 신경쓰이지만, 아니니까. 신경 끄기로 했다. 이번주 일요일은 가족과 평온하게 쉬고싶다.
생일이다.
작년에 오빠가 내 생일을 까먹어서 몇시간 통화로 다투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얼버무리듯 끝났던 기억이 난다. 만약 올해 생일도 마찬가지면 헤어지자고 해야지, 생각했는데 어이없게도 생일날이 오기도 전에 내가 차였다. 잠수 이별도 아니고 잠수 사별이다. 참나...
오빠와 싸울 수라도 있었던 1년 전의 내가 부럽다. 맘먹고 버스를 타면 오빠가 누워있는 그 집으로 달려갈 수 있었던... 아... 또 슬프다....
그래도 가족들이 신경써서 챙겨줬다. 누룽지 통닭도 먹고, 아이스박스 케이크랑 딸기도 먹었다.
아크릴 물감이랑 붓도 사고, 유화용 나이프랑 향수도 선물받았다.
친구들도 많이 축하해줬다. 축하의 말 속에 어려있는 안부 인사와 걱정이 느껴져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고 아무도 내 아픔을 공감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하면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있던 게 일주일 전인데 사람 마음이 이렇게 바뀌기가 쉽던가.
이럴때면 너무 쉽게 괜찮아지는거 아닌가 하는 마음에 오빠한테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다가, 아니 내가 행복해할수도 있지, 난 살아있고 이렇게 살려고 발악하는데 이 정도 행복도 허락이 안되는 건 너무하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오빠가 오빠만의 길을 갔듯, 나도 나의 길을 가는거다.
나도 다시 평범하게 살고싶고... 다시 행복해지고 싶다.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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