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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록/생존일기

20220316_사랑니를 뽑았다

by E0 2022. 3. 16.

하나 남은 사랑니를 뽑았다. 실력이 좋은 의사선생님이셔서 그런가 잔 붓기 없이 깨끗하게 잘 뽑혔다.

뽑혀나온 생니를 봤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저런게 내 입에 들어있었다고? 싶을 만큼 뿌리 부분도 생각보다 길고, 같이 뜯겨나온 잇몸살도 징그러웠다. 하긴, 익숙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거울이나 사진을 통하지 않고서야, 내 두 눈으로 직접 이빨을 볼 수 있는 때는 그게 뽑혔을 때 뿐인걸. 

 

입안에 있을 때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다가, 뽑혀 나왔을때야 비로소 그 존재를 실감하는 현실이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오빠를 잃고나서야 오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내게 오빠라는 존재가 얼마나 컸는지 깨달았던 지금의 상황과 겹쳐보여 씁쓸하기도 했고.

 

나이를 먹는 것이 슬픈 것도, 그리고 그 나이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깨닫는 것도 매해 그 나이를 상실하기 때문이라고 상담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은 상실을 통해서만 그 존재와 가치를 실감할 수 있는걸까. 상실하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 없는 걸까. 아니, 애초 내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각인걸까. 그럼 아무것도 가지려 하지 않고 살아가면 이런 아픔도 피해갈 수 있을까.

 

무심코 사랑니가 있던 자리로 음식을 씹을 때마다 난자리가 눌려 피가 나고 아프다.

할 수 있는건 처방받은 약을 잘 챙겨먹고, 제때 소독 잘 하면서 새 살이 차오르길 기다리는 것 뿐이다.

혀를 대보면 깊고 움푹 패여서 이게 언제 나을까, 과연 낫긴 할까 싶긴 하지만, 예전에 뽑았던 사랑니들도 잊고 지내다 보면 어느순간 흔적도 없이 메워져 있고는 했으니... 나으리라 믿어야지.

하루 빨리 새 살이 돋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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