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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록/생존일기

20220518_오빠가 죽던 날1

by E0 2022. 5. 18.

오빠가 죽던 날 나는 청주에 여행을 가있었다. 대학 후배의 근무지가 청주 근처였기 때문에 후배도 볼 겸, 기분전환 삼아. 그날 정말 하루종일 이상하게 일이 꼬였다. 시간을 착각해 돌아가는 기차표를 새벽으로 예매하지를 않나, 알아봤던 음식점은 갑자기 휴무를 하질 않나, 두 번째로 찾아간 음식점에는 하필이면 먹으려던 메뉴가 품절이었고, 거기에 예약한 향수 공방은 주인이 아주 불친절했다.
집에 올라오는 일요일 저녁, KTX에서 오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오전에 오빠의 시험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쯤 푹 자고 일어났을 시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받질 않았다. 오빠는 만나는 내내 피치 못할 사정(시험이나 일, 가족 식사, 면접...)이 있지 않는 한 연락이 안 된 적이 없는 사람이라, 나는 묘하다고 느끼면서도 평소 시험 보기 전에 벼락치기를 하던 오빠의 모습이 생각나 이번에 시험이 많이 피곤했나 보다, 하고 말았다.

다음날, 오전 반차를 낸 상태였기 때문에 10시까지 늦잠을 자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몸이 불편해서 일찍 눈이 떠졌다.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휴대폰 화면을 켰는데, 그때까지도 오빠한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이제는 좀 편해졌다는 건가' 하는 생각에 심통이 나면서도 연락되겠지, 하고 그냥 넘겼다. 그리고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하면서 오빠한테 '오빠 왜 이리 연락이 안돼. 죽었어?'라고 카톡을 보냈다. 그런데 2시가 넘도록 읽음 표시가 사라지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잠시 후 카톡을 보니 읽음 표시가 사라져 있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 이제 일어났나 보네 하는 생각에 안심하면서 '오빠 안 죽었네 ㅋㅋㅋ 이따 정신 좀 차리면 연락해'라고 보내 놓고 일을 했다.

5시에 퇴근을 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험 결과가 나빠서 나랑 말하기 싫은가, 아니면 혹시 아픈가, 그때 허리가 아프다고 했었는데 아파서 침대에서 못 일어나고 있나'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그때 문득 오빠가 내 갤럭시 탭에 유튜브 로그인을 해둔 게 생각이 났다. 유튜브 시청 기록이 있으면 지금 깨어있고 괜찮다는 거겠지, 하며 유튜브 앱을 켜 오빠 계정에 접속하고, 영상 시청 기록을 살펴봤다. 일요일에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 유튜버의 플레이 영상 몇 개와, 2010년 유행곡 모음집을 본 것을 끝으로 시청 기록이 없었다. 목록을 밑으로 내리니 연탄 자살, 모텔 연탄 자살 관련 뉴스 보도 영상 3개를 연달아 시청한 기록이 있었다.

느낌이 싸했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너무 과한 걱정인가 싶어, 영상 시청기록을 스크린샷으로 찍어 친언니한테 카톡으로 보내면서 '언니 이것 봐. 이상하지' 했다. 언니가 '이상하다. 인천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너 얼른 인천 가봐.' 했다. 나는 '알겠어.' 하고는 오빠한테 전화를 걸면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때 오빠 휴대폰 컬러링이 뚝 끊기고, 어떤 아주머니가 "여보세요." 했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찰나의 순간에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오빠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OOO 씨 핸드폰 맞나요?" 하니, 상대편에서 "네, 저 OO이 엄마예요." 했다. 나는 "아... 저는 OO이 친구인데, OO이가 연락이 계속 안 돼서요." 했다. 그쪽에서 "OO이가... 사고를 당해서... 오늘 갔어요..." 했다. 갔다니? 사고? 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싶으면서 막상 입으로는 "갔다고요? 죽었어요? 자살했어요?" 했다. 진짜 이상하게 미리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 말이 나왔다. 그러자 상대편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상황이 머리로는 전혀 이해가 안 가고 있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면서 숨이 가쁘고 손이 덜덜 떨렸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에서 신음소리가 났다. 어머니께 내가 누군지 전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을 붙들고, 숨을 한 번 들이마신 뒤에 "어머니, 저 그냥 친구가 아니라, OO이 여자 친구예요."라고 말했다. 아이고, 하면서 더 크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우는 목소리로 "지금 빨리 OO병원으로 와요, OO병원 장례식장." 하셨다. 나는 "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옆에 서있던 엄마한테 "엄마 오빠 죽었대, 자살했대. 장례식장 오래." 했다. 엄마가 "뭐?" 했다. 대답하지 않고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언니한테 '오빠 자살했대'라고 카톡을 했다. 손이 떨려서 오타가 계속 났다. 보낸 카톡을 읽고 있으니 갑자기 절벽에서 떠밀려 자유 낙하하는 것처럼 오금이 저리고 온몸 구석구석이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엄마한테 말을 했다가, 허공에 소리를 지르다 오빠를 부르길 반복하며 벽을 치고, 발을 구르면서 길길이 날뛰었다. 엄마가 언니한테 전화를 걸어 빨리 집으로 오라고 했다. 한 시간쯤 뒤에 언니가 도착하고, 카카오 택시를 부르려고 하는데 병원 이름이 생각나질 않아 통화 녹음을 수차례 다시 들어야만 했다. 언니 손에 이끌려 정신없이 택시를 탔다. 가는 내내 왜, 왜 하면서 허리를 숙이고 앉아 울었다. 가는 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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