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록/생존일기

20220407_근황

by E0 2022. 4. 7.

1. 49재
3시간에 걸친 제사를 했고, 처음으로 제사에서 눈치 보지 않고 울었다.
오빠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많이 왔다. 유서에 적힌 친구들의 얼굴도 보였다.
그중 오빠, 나와 같은 대학교 출신이라 안면이 있는 친구에게 유서에 적혀있던 내용을 전해줬다.

오빠의 영정 사진과 가방, 옷을 태울 때 한 번 더 울었다.
그 와중에 '저거 쌤소나이트 가방이라 잘 안탈 텐데...' 같은 생각을 하는 내가 어이없었다.
오빠가 생전에 좋아하던 만두를 종로까지 가서 사 왔는데, 생각해보니 절이라 제사상에 고기를 못 올린다(!) 가족분들께 오빠가 좋아했던 만두라며 전해드렸다.

2. 일
기능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엉망진창으로 해놓았던 업무를 수습하는 매일...이지만 차라리 이렇게 바쁜 게 낫다. 여러 모델을 실험해보니 재밌다. 오빠가 두고 간 컴퓨터를 모델 돌리기 용 세컨드 컴퓨터로 세팅하는 건 어떨까, 싶은데 항상 생각만 한다. 막상 본체를 보면 마음이 흔들거려서... 손도 못 댄다.

3. 약 / 심리상담
우울증 약을 올렸다. 아직까지 큰 차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빠 생각을 안 하려고 해서 그런 건지 약 때문인지 감정이 요동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제사 이후로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심리상담소에서 MMPI 검사를 진행했다.
우울, 히스테리가 높아졌다고 한다. 내가 적어도 2년 이상은 된 만성 우울이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 의외였다. 상담사님께서 증상별로 묶은 어떤 번호 쌍을 말씀해주셨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2-3, 2-0이었던 것 같은데... 다음 상담에 가서 여쭙고 와야겠다.
'자아 강함(Ego strength)' 점수가 낮다고 한다. 50점 기준으로 적절하다고 보는데 나는 38점이다. 앞으로의 심리상담은 이 자아 강함을 강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진행될 거라고 하셨다.

*자아 강함
전체적인 자아 강함이나 능력에는 불안을 견디는 능력, 본능적 충동과 초자아의 요구를 조정하고 전달하는 역량, 적절한 현실 검증과 판단력, 세계와 자기에 대한 현실 감각, 좌절에 대한 적절한 내성과 충동 통제, 개념화하는 능력과 추상적 사고 능력 그리고 적절하게 자아 방어를 이용할 수 있는 역량이 포함된다. 이러한 역량들은 자아의 특정 기능인 지각적, 통합적, 방어적인 기능을 가리킨다. 자아 강함에는 스트레스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 적절한 일과 사회 활동, 취미와 관심에 대한 즐거운 추구 그리고 유머를 즐기는 능력이 포함된다. 자아 약함은 위에서 언급한 자아 역량이 모자라거나 결함이 있는 자아의 상태를 말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자아 강함 [EGO STRENGTH] (정신분석용어사전, 2002. 8. 10., 미국정신분석학회, 이재훈)


아, 신체화 증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신체화 증상이란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될 시 신체에 두통, 관절통 등의 병적 증상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문득 6재때 제사를 다녀온 이후 몸살로 몸져누웠던 게 생각났다.

선생님께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보단 표출되기까지 참는 성향 + 역할 수행에 대한 의무감/책임감이 강한 성향 + 애정/돌봄 욕구가 강한 성향 이 세 가지 특성이 자아 약함과 결합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효율성이 저하되고, 그 결과 강한 스트레스 앞에서 신체화 증상이 또다시 발생할 수 있으니 가족들에게 나의 이런 성향을 알리고 도움을 받으라고 하셨다.

4. 코로나
가족들이 코로나에 걸렸다. 이상하게 나는 증상이 없다.
제사가 끝난 이후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재택근무를 하니까 업무 능률이 올라간다.

5. 남자친구가 없는 나
여자친구라는 정체성을 박탈당한 상태에 묘하게 적응해가는 상황이다.
그런데 확실히 전(이제는 전, 전이라고 해야 하나) 남자친구와 합의하에 헤어졌을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그때는 슬픈 와중에도 후련했고, 새로운 사랑, 진짜 인연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기대, 희망 같은 걸 품고 있었다. '솔로가 된 나'라는 환상도 좀 있었던 것 같고.
지금은... 그저 모르겠다는 느낌이다. 확실히 나는 혼자가 맞긴 한데, '솔로', '싱글', '남자친구 없음' 같은 단어는 아직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은 한다. 언젠가 누군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겠지...?... 잘 모르겠다. 확실히 사람을 믿는 데까지 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항상 이 주제와 관련해서 생각하면 엄청 복잡한 개념을 떠올렸을 때처럼 속이 울렁거린다. 아직은 부담스럽다.

'일기록 > 생존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421_삶 그 자체로의 의미  (2) 2022.04.22
20220418_봄  (0) 2022.04.19
20220329_지긋지긋하다  (4) 2022.03.29
20220328_ 탈  (0) 2022.03.28
20220324_정비, 우울증 공부  (0) 2022.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