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록/생존일기

20220908_차였다

E0 2022. 9. 18. 21:29

내가 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너와 나는 맞물리는 톱니바퀴가 아니다.
너는 나한테 어울리는 옷이 아니다.
널 바꾸고 싶지도 않고, 나를 바꾸고 싶지도 않고
내가 바꿔달라고 해서 바뀐 너를 본다 한들 행복할 것 같지 않다.

뭐 온갖 비유를 가져다 대도, 결국은 넌 내 취향이 아니야 라는 말이지 뭐.

올해 벌써 두 번째 이별이다.
하나는 작별, 하나는 이별.

섣불렀다고 생각한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고, 술을 마셨고, 선을 넘었다.
우리 서로 자기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려고 했던 것 같다. 이건 충동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우기면서.
호감 있던 친구를 잃는 것이 두려운 마음에, 계속 합리화하며 도망쳤던 것 같다.
사실 충동뿐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더 용기있는 있는 행동이었는데도 책임지는 것이 용기 있는 일이라 우기면서.

굉장히 괴로워했었다. 초반에는. 내 본능이 이건 뭔가 잘못됐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사람과 함께 밤을 보내고 나면 지독한 자괴감과 외로움, 공허감에 그 사람의 몸이 닿지 않는 침대 한쪽 끝에 웅크려 있곤 했다.

그래도 좋아하고 싶었다...
아니지, 나는 그냥 확인하고, 나아지고, 편안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다시 다른 사람 만날 수 있을 만큼 정상이 되었다는 것(그렇기 때문에 나는 전 남자친구 때문에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행동이다, 나는 이 사람이 좋다 같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 아닌 것을 의식적으로 되뇌었다.

난 나만 그런줄 알았다. 그래서 나만 진짜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 사람도 그러고 있었다.
내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에 놀라면서도, 뒤통수 얼얼하게 충격받지 않은 것이 그런 이유에서 같다. 딱 그정도 몫의 마음만 내주고 있었으니, 그 정도 몫의 충격만 받는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럼 마음이 비어버린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나를 이용했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왜냐면 나도 이용한게 맞으니까. 몸이 받아들인거면 마음도 받아들인 것이라, 세뇌해가며.

나는 내가 잃어버린 어떤 애정과 껴안은 몸이 주는 따뜻함을 그 사람으로부터 계속해서 채워나가려고 했다. 그 사람을 만나는 내내, 전 애인과 그 사람을 계속 비교하면서 전 애인은 이렇게 해줬는데, 얘는 이러지 않네 하면서... 내가 바라는 모습, 나에게 익숙한 방식을 정해놓고 그렇게 해주지 않는 사람에게 서운해하며 화를 냈었지.
내가 단 한순간이라도 그 사람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을까. 이제 와서 생각하니... 참.

그저 수습과 수습의 반복일 뿐인 관계가 잘 이루어질 리가.
목적이 서로에게 있지 않은, 껍데기 뿐인 관계.
친구로서 가졌던 애정이 아까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는 척하며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행동을 흉내내는 이상한 관계.

일단은 그래도 몇 년을 알고 지냈던 좋은 친구를 나의 섣부른 행동으로 인해 잃었으므로...
상실감에 마음이 아프고 공허하다.

한 편으로는 진실하지 않은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완전한 나 자신을 줄 수 있을 때가 아니면 연애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든다.

더 솔직해져야한다. 용기를 내어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