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록/생존일기

20220329_지긋지긋하다

E0 2022. 3. 29. 13:04

오빠의 핸드폰을 태운다고 한다. 앨범에는 내 사진밖에 없다.
다른 사진은 다 지웠던데. 아니, 하드 디스크로 옮긴 건가. 오빠 물건 못 챙겨 와서 어떡해...

근데 의미 없나... 어차피 죽은 사람인데 사진이 있든, 없든...
그리워할 거리들을 많이 남겨두는 게 맞는 건지. 그게 과연 누구에게 좋을지.
간 사람은 그렇다 쳐도 남은 사람에게 좋을지.
지금 당장은 눈앞에서 치우고 싶을 테지만, 나중에도 그럴까?

49재 전에 오빠 물건을 한 번 볼 틈이 있을 거다. 핸드폰, 지갑, 옷 같은 거. 핸드폰을 한 번 더 보는 게 맞을까, 그 안에 남겨진 기록의 잔상을 내가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까. 아... 힘들다.

간 사람도 남은 사람도 불쌍한 사람들밖에 없다.

남은 삶을 견뎌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지친다. 울다 잠드는 것도,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숨이 멎으면서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지우지 못한 사진들과 카톡, 문자, 통화 녹음도, 번개탄 자국이 묻은 오빠의 키보드와 마우스도, 고작 5쪽짜리 유언장이 담긴 usb도...
정말, 정말 지긋지긋하다.